나영이사건.

'나영이사건'이라고 부르는 게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나영이사건'이라고 지칭하겠다. ('조두순 사건'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긴 하지만, i) 범죄자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ii) 잘못하면 범죄자의 이름이 길이 남아-비록 안 좋은 방향이라도-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업무 중에 직장동료로부터 '너무너무 화가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었다. 회사 업무 중에 또 안 좋은 일이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동료가 보내준 link 를 따라 들어간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나영이 사건에 대해서는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알고 있으니 내용에 대해서는 생략함.)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흥분을 하고, 범죄자에 대해 분노하고, 피해자에 대해 동정하며, 재판관에 대해 분노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해 욕하기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성범죄를 방조하는 사회이다.

성범죄에 대해서 내가 어릴적 처음 교육받은 내용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친구집에서 놀다가도 친구 아버지나 오빠가 귀가하면 그냥 집에 와라 등을 제외하고) 여자가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지 않으면 성범죄의 타겟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 교육을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성범죄는 '여자'가 '그럴만한' 말미를 주었기 때문에 '남자'가 '자연스러운 층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라는 인식이 너무도 팽배해 왔다. 그러다보니 성폭행은 '폭행'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행동이나 옷차림을 잘못해서 성폭행을 당했으며, 더러운 여자'로 인식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는 사회이다. 그러다보니 성폭행의 피해자인 여성은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발'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하나 생각이 난 게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폭행의 가해자'에 대하여 i) 여자가 '끝까지' 저항을 하지 않았으며, ii) 결국에는 여자도 즐겼다 라는 논리로 정당화시켜 버린다.  (무척이나 non-sense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통념이다.)

기사 등을 보면, 일부 '용기있는' 여자들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고발하더라도, i) 행동을 잘못했으니 혹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으니 아니면 자극적인 색상의 옷을 입었으니 남자가 충동을 느끼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 ii) 너도 즐기지 않았느냐 라는 경찰관/법관의 태도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사회의 통념이 성폭행의 피해자를 두 번 가해하며, 가해자에게는 너그러운 처벌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통념상 i) 성욕을 느끼지 않으며, ii) 성에 대해서 (아직) 무지하며, iii) 저항할 힘이 없는 '8살난 여자아이'에게 성폭행 뿐만 아니라 몸에 심한 상처를 입혀 평생 그 후유증을 앓고 지내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다보니 위에 언급한 '여자도 성폭행을 당하는데 한 몫 했다'는 통념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래서 온 국민은 '깔끔하게' 나영이 사건에 대해 분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동에 대한 성범죄만이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 (가끔은 남성)에 대한 성폭력이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다른 '폭력'을 당한 피해자와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피해자'가 되어야지 '공범자/방조자'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다행히 언론에서 공론화한 사건에 대해 전국민의 여론이 불붙었고,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매체의 전달력으로 인해 정부, 그리고 국가원수인 대통령까지 관심을 갖고 언급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 점에서 인터넷은 과거 그리스에서-소수 인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직접민주주의를 가능케하는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국민적 여론을 모으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이러한 사건이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단 한 번도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방지대책을 세우느냐가 정말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전체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그러나 예외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그렇게 극악무도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딸에게 똑같이 당하게 해서 그 고통이 어떤 건지 느끼게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생각에 대해서 심심한 우려를 표하며, 강력히 반대한다. 그 딸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또다시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슬람권에서 그런 방식의 보복이 있다고 들었다. 강감범의 누이를 윤간하는 것인데, 나는 그 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 벌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으며, 왜 또다른 성폭력의 피해자를 한 명 더 만들어야 하는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본인의 딸의 고통을 과연 그렇게 고통스러워할지도 의문이다. 본인이 극심한 범죄를 지었다면 그로 인해 자식들이 어떻게든 멍에를 질 것은 분명한데, 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극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회로부터 영구격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공감한다. 그러나 영구격리시키는 시설과 부대비용을 과연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반대다.)

법을 고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맞는 말이고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통념을 바꾸는 작업, 우리 모두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故 장자연 씨 사건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되어 개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故 장자연 씨 사건은 결국... 모두의 우려되로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지적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냄비근성. 알면 이제 고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많이 성숙해진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수준과, 정치인들-이라고 하니까 왠지 신뢰가 안간다.-과 국정운영자들의 의식과 노력을 기대해본다.






by Rieko | 2009/10/02 01:07 | 시사 * issue | 트랙백 | 덧글(0)

스링.

내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그리고 얼마전 내게 괴로움을 준 사람이 내게 지어준 별명, 스링.
multi-lingual 이란 의미로 스링구얼, 스링이라고 불렀다는데, 처음에는 스멀스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라고 했었는데, 계속 들으니 스링의 '링'이 뭔가 차임벨이 울릴
때 나는 것 같은 상큼한 소리처럼 느껴져서 지금은 스링이라고 불리우는 것도 괜찮다.

multi-lingual.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중국어 중에 국어(보통화 혹은 화어)가 편하고, 광동어는 communicable
하게는 쓸 수 있고, 일본어도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고, 영어도 그럭저럭 할 수 있다.
일단 대충 5개는 무난하게 쓸 수 있다고 보고, 다른 언어들도 가끔씩 취미삼아 보기도 한다.
그러면 스링인가?

언어학과에 갔었다면... 그래서 동아시아 언어학을 했었다면 어땠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언어를 취미로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 쪽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by Rieko | 2009/03/23 00:18 | 언어쟁이 | 트랙백 | 덧글(0)

苦しみ

직장에서의 삶에 대해서 첫 post를 "苦しみ"로 적게 되어 조금은 아쉽지만, 그게 현재 나의 status인 것을 어쩌겠어..

나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라는 기본적인, 그러나 쉽게 잊고 마는, 대전제 하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번에 그런 대전제를 잊고서 상대방이
바뀔 수 있다고, 둘이 타협점을 찾으면 better solution이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던 데에 가장 큰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1년(정확히는 10개월 전) 겪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꺼려졌었고, 그리고 그것을
'조심'한다는 포장으로 solutions를 제시해보려고 했던 게 이렇게 일이 꼬여가게 된 근본 원인이었던 것 같다.

쉽게 얘기해서 내 잘못이 맞는데, 내가 100% 잘못했다는 거는 아니고 내가 조금 더 注意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아니, 내 기대치대로 해석하고 믿어버리려 했다는 게 내 不注意였고, 그게 내 잘못이었다는 얘기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이미 발생한 것을 고치는 것은 不可하니, 이것을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져가냐는
것만이 나에게 남은 이번주에 해야할 일인 것 같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내 멋대로 하는 게 아니잖니.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좀 더 배려해서, 나의 주장과 나의 생각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합의점과
더 나은 solutions를 찾아는 것, 그게 직장생활을 잘 한다는 것 아니겠니..

그 동안 내 멋대로 생각했고 내 멋대로 행동했던 데 대해 일침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앞으로 더 긴 시간을 더 잘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자. 안그러면 지난 1주일 여동안의
내 마음 고생이 너무 아깝고 불쌍하지 않니.

by Rieko | 2009/03/23 00:06 | 삶 in 직장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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